단편으로 엮은 성장담…짧은 소설, 긴 울림

입력 2022-05-04 17:55   수정 2022-05-05 00:20

글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글의 길이에 좌우되지 않는다. 지난해 첫 장편 《밝은 밤》

으로 대산문학상 대상을 탄 소설가 최은영(사진)이 이번엔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마음산책)로 돌아왔다. 13편의 초단편과 원고지 100장 안팎의 단편 소설 한 편을 수록했다.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는 “엄마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에 기도원에 들어갔다. 말이 기도원이지 사이비종교 공동체에 몸을 담기로 한 거였다”로 시작한다. 이후 ‘나’는 아빠를 따라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서울의 고교로 전학 가는데, 유나라는 아이가 먼저 다가와 친해진다. 유나에게 털어놓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퍼지면서 둘은 서먹해진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당시를 회상하며 화자는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라고 말한다.

특별한 것 없는 사건이지만, 최 작가는 유려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우리가 서툴고 미숙하던 시절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상처받아 뾰족해졌던 마음의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열병 같던 시절이 지나고, 어느덧 담담해진 상태에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성장 스토리다.

전작에서 보인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서사, 폭력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이를 봉합하고 아물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책 마지막에 실린 단편 ‘무급휴가’가 그런 예다. “진짜를 가질 자신이 없어서 늘 잃어도 상처되지 않을 관계를 고르곤 했다”는 두 여성이 예술과 가족, 관계를 아우르며 어떻게 상처를 이겨내고 공감에 이르는지 보여준다.

2013년 등단해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랑》 등을 펴낸 최 작가는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등을 받는 등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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